무제

歷史/중국 2016. 3. 16. 19:08

무제 

중국 전한(前漢) 제7대 황제(재위 BC 141∼BC 87). 

성명 유철(劉徹). 시호 세종(世宗). 즉위 후 전대의 권신들을 면직시키고 어질고 겸손한 선비를 등용하여 관리의 자질을 향상시켰다.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두어 유학에 중점을 두고, BC 127년부터 제후왕국을 왕의 여러 아들에게 분봉(分封)하여 중앙집권화하였다. 

후에 전국을 13주(州)로 나누고, 주마다 자사(刺史)를 두어 군수를 감독시켰다. 또 운하를 굴착하여 농지의 관개와 운송을 도왔다. 대외적으로는 장건(張騫)을 대월지국(大月氏國)으로 파견하고, 장군 위청(衛靑), 곽거병(볏去病), 이광(李廣) 등에게 흉노를 토벌시켜 오르도스 지방을 회복하여 2군을 두고, BC 119년에는 위청이 흉노를 외(外)몽골로 내쫓았다. 

하서(河西)에 있던 흉노 혼야왕(渾邪王)도 항복했으므로, 그 곳에 4군을 두어 중앙아시아와의 교통로를 확보하고, 서역 제국의 입공(入貢)이 계속되었으나, BC 104년에는 이광리(李廣利)에게 명해 파미르고원 북서에 있는 대완국(大宛國:페르가나)을 정벌하게 했다. 

흉노의 방위와 서역 유지를 위해 요지로 한인을 이주시키고, 또 둔전(屯田)을 두었다. 남방에서는 지금의 푸젠성[福建省]에 있던 민월(툼越)·동월(東越) 두 왕국을 합치고, BC 111년에는 번우(番濤:廣東)에 도읍한 남월왕국을 멸망시켜 9군을 두고, 쓰촨성[四川省] 변경에서 윈난[雲南]·구이저우[貴州] 방면에 이르는 염방(騎臧)·수(頊)·작(瑪)·야랑(夜郞)·전(苗) 등의 종족을 귀순시켜, 그곳에 6군을 두었다. 동으로는 조선을 공격, 왕검성을 함락시키고 BC 108년 낙랑 ·진번 ·임둔 ·현도 4군을 두어 군현제를 실시했다. 

외적에 성공한 반면, 궁전과 이궁을 짓고, 불로장생을 믿어 방사(方士)를 모아, 태산(泰山)에서 봉선(封禪)하고 각지를 순행했으므로 군사비를 압박했다. 그래서 증세 ·신세(新稅)에다 소금[鹽]·철(鐵)을 전매하고 균수(均輸)·평준법(平準法)을 제정하고, 무공작(武功爵)을 팔기도 했으나, 관리의 부정이 심해지고, 국민의 생활도 궁핍해져 황태자의 반란[巫蠱의 亂]이 일어났다. 

만년에는 외정을 중지하고, 다시 먼 거리에 있는 윤대(輪臺: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둔전(屯田)을 폐지, 백성을 다스리는 데 힘썼다. 무제 때의 특색은 중앙집권화와, 밖으로 지역이 확대되고, 특히 중앙아시아를 통해 동서교섭이 왕성해진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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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javu-Dog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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